완벽한 스트라이커 Andriy Shevchenko
2006년 6월 19일 Volksparkstadion 독일 월드컵 H조 경기 사우디아라비아 대 우크라이나 경기 후반 막바지에 우크라이나가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4-0으로 앞섰습니다.
교체 선수에게 국기를 게양한 우크라이나 팬들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안드리 솁첸코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을 축고 경의를 표하는 우크라이나 팬들의 진심을 엿볼 수 있다.
이름: 안드리 셰브첸코
나이: 1976년 9월 29일
국적: 우크라이나
체형: 183cm / 73kg
포지션: 스트라이커
선수 경력
대표팀: 111경기 48골
세계 선수권 대회 (2006년 독일 세계 선수권 대회)
UEFA 유로 (EM 2012)
직업 경력
FC 디나모 키예프 (1994–1999)
AC 밀란 (1999–2006)
첼시 FC (2006–2009) → AC 밀란 2008–2009 임대
FC 디나모 키예프 (2009–2012)
1990년대 중후반과 2000년대 초반 세리아 A는 스트라이커의 무덤으로 불렸다.
각 팀마다 세계 최고의 수비수를 보유하고 있고, 수비라인에는 이탈리아 선수들이 많이 있는 포워드들에게는 살아남기 힘든 공포의 리그였다.
그러나 1999년 축구 변두리인 우크라이나 출신의 한 청년이 AC밀란에 입단했다.
이적 첫해 득점왕, 세계를 놀라게 하다
FC 디나모 키예프
1994년 홈리그 절대강자 디나모 키예프의 멤버로 데뷔했다.
그는 117경기에서 총 60골을 기록하며 디나모 키예프의 우크라이나 리그 3회, FA컵 복식, 5회 연속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1996/1997 시즌 우크라이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에서
그의 활약은 우크라이나 리그뿐만 아니라 Campunu에서 FC 바르셀로나와의 1997/1998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팀이 4-0으로 승리하여 토너먼트에서 가장 놀라운 팀이되었으며 Shevchenko가 그 중심에 있었고 승리했습니다.
전반전에는 단 한 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전 세계 축구팬들로부터 동유럽의 호날두, 하얀 호날두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8·99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맞붙은 셰브첸코는 2경기에서 3골을 터뜨리며 팀의 승리를 도왔고 지난해에 이어 다시 대회 최강팀이 됐다.
뮌헨에 패해 결승 진출은 아쉬웠지만 셰브첸코는 2골을 터뜨리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AC 밀란
물론 셀 수 없이 많은 유명 구단들이 챔피언스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젊은 인재들에게 제의를 해왔다.
산 시로에 입단한 솁첸코는 시즌 1부터 세리아 A를 무너뜨리며 파문을 일으켰다.
AC 밀란 팬들은 그를 은퇴한 전설 반 바스텐과 비교하는 새로운 시대의 영웅을 보고 솁첸코가 바티스투타와 비에리 같은 저명한 스트라이커를 물리치는 것을 보고 흥분하고 있다.
크레스포로 이적 1년 만에 성공왕이 된다.
이후 다음 시즌에도 리그 24골을 기록하며 놀라운 득점 속도를 이어가며 데뷔 시즌과 2003·2004시즌 두 차례 세리아 A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7시즌 319경기 173골이라는 엄청난 골. 현역임에도 불구하고 셰브첸코는 AC밀란 시절 우승과 깊은 인연이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솁첸코의 활약과는 별개로 AC밀란은 세브첸코 영입 이후 지난 시즌 리그 우승 후 주춤했고, 2003/2004시즌에만 솁첸코의 첫 세리아A AC밀란은 세리아A 1회, 코파 이탈리아 1회,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 총 7시즌 동안. 성공적인 경력이었습니다
2001/2002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팀은 스쿼드를 강화하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했습니다.
Rui Costa는 Fiorentina에서 영입되어 재정 위기로 어려움을 겪었고 Inzagi는 Trezeguet의 존재로 인해 유벤투스에서 자리를 잃었고 Milanese Competitors Inter의 Andre Pirlo는 또한 이듬해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우승한 히바우두를 바르셀로나로, 시도프를 경쟁자 인터밀란으로 영입했고, 라치오의 젊은 주장 네스타도 영입해 스쿼드를 강화하고 우승을 노렸다.
리그
2002/2003 시즌 장기 부상으로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셰브첸코는 챔피언스리그 아약스와의 8강전에서 중요한 골을 넣었고 인터 밀란과의 4강전에서 환상적인 골을 넣었다.
1-1 무승부 결승 다득점 원칙은 팀이 Old Trafford에서 유벤투스를 상대로 결승전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밀란으로 이적해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을 거머쥔 셰브첸코는 다음 시즌 두 명의 브라질 선수와 팀을 이뤘다.
AC 밀란은 2003/2004 시즌을 대비해 브라질 상파울루 출신의 셀레상 주장이자 AS 로마 라이트백 카푸를 영입해 17위를 기록하며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했다.
그리고 교체 투입된 루이 코스타 한카카는 이적 첫해 2명의 선수를 내보냈고, 첫 시즌 주전으로 활약한 솁첸코와 좋은 시너지를 보였다.
Ballon d»또는 수상
그러나 2003·2004시즌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무패로 탈락했지만 8강 1차전에서 스페인의 데포르티보를 홈으로 불러 4-1로 이기고 8강에 진출했지만 0-4로 패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으며 유명한 이스탄불의 기적이 다음 시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004/2005 및 2005/2006 시즌에는 세계 축구에서 가장 강력한 스쿼드를 갖춘 팀이 등장했습니다.
브라질 대표팀인 Dida는 골키퍼, 유명한 Malnesca 라인은 수비 Maldini-Nesta-Stam-Kafu 미드필더 Pirlo-Sidorf-Gattuso-Sevchenko – 카카의 공격형 AC 밀란의 크레스포는 당시 한국 축구팬들이 가장 많이 회자하는 라인업이었지만, 라리가에서는 카펠로 소속의 유벤투스에게 리그 우승을 안겨줬고 2004/2005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유명 리버풀 FC를 상대로 승리를 안겼다.
이스탄불에서는 기적의 희생양이 되어 준우승에 올랐지만 2005·2006시즌 4강전에서 FC바르셀로나에 패했다.
2004/2005 결승전에서 리버풀을 만난 AC 밀란은 말디니의 선제골과 크레스포의 두 골로 전반을 3-0으로 마쳤다.
전반전은 후반전 무승부였습니다.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리버풀은 두덱의 절묘한 선방으로 역사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다음 키커는 솁첸코, 그리고 그것을 특징으로 한 장면 솁첸코는 솁첸코가 영원히 기억할 중요한 득점 찬스로 연장전에서 2연속 슛을 막아냈습니다.
팬들 적극적인 활약을 펼치며 관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8강전에서 바르셀로나에 패한 뒤 최고의 팀으로 다시 리그 우승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첼시 FC
요컨대 셰브첸코는 첼시 시절 AC밀란의 골 머신과 정반대의 형태로 실패한 영입이 됐다.
솁첸코는 당시 무리뉴가 원했던 선수는 아니었지만 구단주 욕심으로 영입한 선수였다.
좋지 않은 몸 상태는 물론, 디디에 드록바의 엄청난 활약에 밀려 본 대회에서 벤치 자원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중요한 FA컵 챔피언스리그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몇 골을 넣었지만, 이적 당시 500억원 안팎의 이적료에 22골을 넣었던 것에 비하면 원래 소속팀인 첼시에 비하면 부진한 성적이었다.
76경기에 출전해 대회 2골이라는 저조한 기록을 남기고 결국 첼시 복귀 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첫 프로 데뷔팀인 우크라이나의 디나모 키예프로 이적했다.
친숙한 흙
국가대표
월드 챔피언십
아마도 우크라이나 팬들만이 셰브첸코의 월드컵 데뷔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모두가 세계 득점왕의 월드컵 진출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미끄러져 월드컵 진출에 실패할 때마다.
세계선수권에 선발된 셰브첸코는 세계선수권 진출을 위해 모든 대회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아쉽게도 계속 미끄러졌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지역예선 플레이오프 2위 vs 크로아티아 1, 2차전에서 1골을 넣은 셰브첸코를 포함해 1-3 합계 지역예선 총 6골
2002 한일 지역예선 월드컵 독일과의 플레이오프 2위 셰브첸코 1골 포함 1, 2차전 합계 2-5 패배 지역예선 통산 10골
유로 2000 예선 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조 2위 VS 슬로베니아 1, 2차전에서 2-3으로 패한 세브첸코 1골
유로 2004 예선 3위 탈락
구단의 빛나는 기록과는 달리 국내 주요 대회와 무관한 불운한 선수로 꼽히기도 했다.
확정되자 국내 축구팬들도 많은 뉴스와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했다.
월드컵 꿈의 무대 조별리그 1차전에서 스페인에 0-4로 패했지만 2차전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4-0 승리를 거두며 화를 풀듯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다.
PK골을 넣은 우크라이나는 16강에 진출했다.
8강전에서 챔피언 이탈리아를 만나 0-3으로 패해 탈락했지만 대표팀과 함께 대회를 성대하게 마무리하며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8강에 진출했다.
자국에서 개최된 유로 2012는 자국이 주최하는 대회인 만큼 자국민들의 큰 성원을 받으며 출전했지만 우크라이나는 프랑스와 잉글랜드에 패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팀 역사상 첫 승을 안겼다.
유로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클래스를 보여주고 그 토너먼트가 끝날 때 국가 대표팀에서 은퇴했습니다.
쓰기를 끝내다
그의 전성기에는 말 그대로 완벽한 공격수였습니다.
수비수 1~2명을 가볍게 제칠 수 있는 빠른 스피드, 박스 안과 밖을 오가는 두 발로 득점력, 높은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한 높은 타점 헤더, 퀄리티 있는 프리킥 능력, 포워드가 가능한 멀티포지션 능력 쉐도우 -스트라이커-풀백 커버링 안함 그래도 모든 면에서 완벽한 스트라이커였다.
비록 첼시에서 탈락했고 대표 유니폼을 입고 많은 국제대회에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축구를 지켜본 축구팬들은 세리아A 리그를 석권한 골 머신인 셰브첸코의 경기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